‘액자’ 밖으로나온 자오둥 판화

과거 액자 속에 조용히 담겨있던 자오둥 판화가 오늘날 쿠션, 어깨의 배낭, 방안의 벽걸이가 되어 현대인들의 일상에 스며들고 있다. 산둥 옌타이의 수공예자 주우쉐(朱武學)의 손에서 이 오래된 기법은 액자의 테두리를 벗어나 수많은 가정의 일상에 스며들고 있다.

‘액자’ 밖으로나온 자오둥 판화

주우쉐의 작업실에 들어서면 벽과 책상, 선반 곳곳에서 판화와 패브릭 공예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풍경을 볼 수 있다. 그의 예술적 계몽은 어린 시절 집에서 제작했던 남화인포(藍印花布, 흰 천에 남색 무늬를 염색하는 것)에서 비롯되었다. “선조들은 방염을 위해 석고로 천에 무늬를 그렸습니다. 염색 후에 석고를 긁어내면 흰 꽃무늬가 천에 새겨졌는데, 그 ‘각(刻)’과 ‘인(印)’의 초기 형태는 제 마음속에 판화를 심어준 최초의 씨앗이었습니다.” 그는 당시를 회억하며 말했다.

지난 20세기 80년대에 주우쉐는 본격적으로 판화 창작의 길에 들어섰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지녔던 회화에 대한 사랑을 자오둥 대지의 산과 바다, 어부의 노랫소리와 조화시키며 점차 간결한 선과 소박한 색채, 지역적 정서가 짙은 개인 창작 스타일을 형성했다.

주우쉐는 “판화 창작은 마음이 급해서는 안 됩니다.”라며 작품 구상에서 완성되기까지 몇 개월이 걸린다고 말했다. 그는 펑라이거를 소재로 한 작품을 가리키며 “복잡한 작은 판을 하나 새기는데 매일 작업해도 10일 이상이 걸려야 완성됩니다. 복잡한 작품은 선을 그리는 데만 몇 일 걸리고 색을 입힐 때는 하나하나 더 정성을 들여 다듬어야 비로소 부드러운 질감과 깊이를 나타낼 수 있습니다.”라고 소개했다.

‘느리게 공을 들이는’ 방식을 고수하면서 주우쉐는 새로운 도구도 잘 활용하고 있다. 그는 스마트 방식을 이용해 선 그리기를 생성하거나 컴퓨터로 전통 문양을 정확하게 조정한다. “기술은 샘플 제작을 더욱 빠르게 하지만, 칼로 새기는 촉감이나 색채의 짙고 옅음 등 디테일한 부분은 판화의 대체할 수 없는 영혼입니다.” 그가 말했다.

자오둥 판화가 본격적으로 ‘액자’ 밖으로 나오게 된 것은 2007년에 창작된 ‘천 위에서의 탐구’가 시작이었다. 주우쉐는 판화 도안과 패브릭 공예의 질감을 결합해 12지신, 절기, 자오둥의 풍물 등을 테마로 다양한 파생상품을 창작했다.

창작 과정에 주우쉐는 판화와 원단 질감의 조화로움을 강조했다. 인테리어 그림을 제작할 때, 그는 자연스러운 무늬의 마포를 사용하고 탁본 시 수공예로 각판한 흔적을 보류해 판화의 고풍스러움과 마포의 무늬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지게 했다. 아동용 패브릭을 디자인할 때에는 순면 원단을 선택하고 둥글고 부드러운 선으로 무늬를 단순하게 하여 예술적 특색을 유지하면서 안전한 사용을 보장했다.

그중 12지신 인형 계열은 유난히 많은 사랑을 받았다. 천진난만하고 귀여운 돼지띠에서 의기양양한 ‘성세의 준마’에 이르기까지, 한 땀 한 땀 사이에는 판화의 선의 운율이 녹아 있다. 인형은 면마(棉麻)를 기본 재료로 하고 판화 도안을 탁본한 후 다시 수작업으로 디테일한 부분을 그려냈다. 이 한 가지 품목만 연간 판매량이 1만 개 이상에 달했다.

현재 그의 판화는 테이블보, 향주머니, 캔버스 가방, 벽걸이 등 수십 종의 일상용품으로 파생되었다. ‘자오둥 어부의 노래’가 찍힌 테이블보에는 바다의 숨결이 담겨 있고 절기 무늬를 수놓은 향 주머니는 사계절의 향기를 담았으며 펑라이거 패브릭 벽걸이는 벽면을 장식하는 하나의 풍경이 되었다.

전통 기법을 계속 이어가기 위해 주우쉐는 공방을 설립하고 10여 명의 학생들을 이끌고 함께 노력하고 있다. 그는 “작품을 감상하고 활용해 주는 사람이 있는 한 이 길은 계속 걸어갈 것입니다.” 라고 말하며, 앞으로 현대적인 미학과 어우러지는 작품을 더 많이 창작하여 패브릭 예술을 통해 자오둥 판화의 고풍스러운 매력을 더 많은 사람들의 일상 속에 불어넣고 싶다고 덧붙였다.